얼마전만 하더라도 WTI 유가가 100달러를 바라봤었습니다. 무식하게 치솟는 유가를 보며 포트폴리오에 에너지 비중을 좀 가져가야 할 것 같은데 어떻게 해야할 지 잘 모르겠더라구요. 마침 국내 거시경제 전문가 오건영이 유가를 이해하기 위해서 추천한 책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이종헌의 <에너지 빅뱅>입니다. 미국의 셰일혁명이 세계 에너지의 지형 변화를 어떻게 일으켰는지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에너지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
우리가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화석에너지는 탄화수소 hydrocarbon 입니다. 원유의 경우 크게 탄소 85%, 수소 12%로 구성되어 있는데요. 이것이 에너지로 사용되면서 많은 양의 탄소가 대기 중으로 날아가 지구온난화를 유발하는 것입니다. 탄소발자국이니, 탄소중립이니 하는 탄소가 바로 여기에서 나옵니다.
셰일혁명
천연가스가 발전연료로서 석탄을, 수송연료와 석유화학 연료로서 석유를 빠르게 대체하고 있습니다. 또, 전세계 전기 생산의 20%를 담당하고 있으나, 그 비중은 앞으로 더 증가할 것이라 봅니다. 이 모든 것은 미국의 셰일혁명으로 천연가스의 가격이 현격히 떨어졌기에 가능한데요. 셰일혁명이란 무엇일까요?
전통 유전에서의 채굴은 컵 속에 모아져 있는 물을 빨대로 빨아올리듯이 간단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셰일오일은 카펫에 적셔져 있는 물기처럼 넓게 퍼져 있어 이것을 뽑아내기가 여간 어려운게 아니었죠. 바로 이것을 가능하게 한 것이 수평시추와 수압파쇄입니다.
수평시추란 드릴이 2km 지하에 수평으로 누워있는 셰일층을 만나면 그 때부터 ‘L’자로 수평으로 정교하게 꺾여 셰일층을 파고 들어가는 공법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파고 들어간 바위에 화약을 터뜨려 촘촘히 균열을 내고 모래와 화학 첨가물을 섞은 물을 강력한 압력으로 분사하여 천연가스와 원유가 분리되면 파이프로 끌어올리는 것이 수압파쇄입니다.
전통유전이 유정에 구멍을 하나씩 뚫어 시추하던 것을, 셰일유전은 철도처럼 레일을 깔아 매우 빠르고 효율적으로 유정을 뚫어 시추하는것이 가능합니다. 또, 전통유전의 경우 승인에서 시추까지 3~5년씩 걸리는데 반해, 셰일유전은 시추까지는 6개월, 생산까지는 다시 1~2개월이면 충분하다고 하니 신속하고 역동적이라고 볼 수 있죠. 손익분기점은 배럴당 30달러라고 하네요.
이같이 채굴의 생산성이 획기적으로 증대되는 바람에 전 세계의 석유 매장량이 크게 증가하였습니다. 셰일층에서 천연가스가 쏟아져 나오고 이것이 빠른 속도로 석유를 대체하기 시작하니 석유는 갈 데가 없어지며 유가는 폭락을 거듭할 수밖에 없습니다.
천연가스
천연가스는 석유나 석탄보다 열효율이 높지만 오염물질은 훨씬 적게 배출합니다. 생산비 측면과 발전소 건설비용 또한 원전, 석탄에 비해 저렴한, 가장 합리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자원이라고 볼 수 있죠. 인류의 궁극적인 에너지가 신재생과 핵융합이긴 하지만 그것으로 에너지 수요를 완전히 채울 때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브릿지‘ 연료로서 천연가스의 역할이 매우 적절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수송비용이 다른 자원보다 많이 드는데요. 차량이나 열차, 선박으로 손쉽게 운반할 수 있는 석유나 석탄과 달리 천연가스를 수송하기 위해서는 파이프라인을 통해 기체 상태로 수송(PNG)하거나, 영하 160도에서 액체 상태인 LNG로 바꾸어 선박으로 수송해야 합니다. 따라서 수송비용이 석유나 석탄에 비해 월등히 높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천연가스 시장은 지역별로 분리되어 있는데요. 지역적으로 가까운 유럽과 북미는 PNG로, 아시아는 LNG형태로 수입합니다. 참고로 육로를 이용한 PNG의 경우 LNG 방식 운송비의 3분의 1수준이라고 합니다.
기존의 천연가스 시장은 의무인수조항(이 가격에 무조건 사야해요)과 목적지제한조항(리셀금지) 등을 둔 판매자 우위 시장이었으나, 셰일혁명으로 인해 공급이 늘어나며 구매자 우위 시장으로 바뀌었는데요. 천연가스의 수요는 석유와 달리 주로 전력생산에 쓰이기 때문에 당분간은 수요가 공급을 따라가지 못할 것으로 보입니다.
석유시장을 이해하는 법
석유시장의 참여자들을 살펴봅시다. 수요자는 선진국인 OECD와 이머징국가입니다. 책의 집필시기인 2016년을 기준으로 보면 OECD가 48.4%, 그 외 이머징국가가 51.6%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석유의 수요는 가격보다는 경기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고 하네요.)
공급자는 OPEC+인데요. OPEC국가(이하 OPEC)와 비OPEC산유국가(이하 OPEC+)를 아울러 OPEC+라고 합니다. 2016년 기준으로 봤을 때 OPEC의 공급량은 41%, OPEC+의 공급량은 59%를 차지합니다. OPEC의 내에서도 사우디아라비아가 14%로 독보적이구요, 그 뒤를 이라크, 이란, UAE가 각각 4%대 중반, 쿠웨이트가 3% 중반을 점유하고 있습니다. OPEC+는 미국과 러시아가 각각 14%, 중국이 5%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정리하면, 사우디가 주도하는 OPEC이 주공급자이고, OPEC+는 수요자이자 공급자입니다. OPEC+는 자신들이 생산한 원유를 먼저 사용하고 부족한 부분을 OPEC에서 수입하는데요. 이런 이유로 OPEC을 ‘잔여 공급자’ 혹은 ‘시장 균형자’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그들이 공급하는 물량은 OPEC+의 공급을 뺀 잔여물량이라고 볼 수 있겠네요.
그럼 유가가 어떤 역학으로 움직이는지 이해가 되는데요. OPEC+가 자신들이 생산한 물량 외에 추가로 필요한 수요보다 OPEC이 더 많이 생산하면 가격이 떨어지고, 더 적게 생산하면 가격이 상승하게 됩니다. 즉, OPEC의 실제 생산과 잔여 공급자로서 OPEC에게 요구되는 물량, 즉 ‘콜 온 오펙 Call on OPEC’의 차이가 유가의 흐름을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또 살펴봐야 할 부분이 있는데요. 앞서 말씀드렸던 것처럼 석유의 수요는 경기에 따라 움직이는 일정한 패턴을 보이고 있으므로, 유가의 단기 변동은 수요보다는 공급요인에 의해 결정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석유시장은 공급자가 정해져있는 독과점 시장이므로, 담합에 의해 언제든지 공급 물량이 조정될 수 있습니다. 1차, 2차 오일쇼크는 바로 이런 구조적인 문제로 터진것이죠.
유가 사이클
- 1차 변동(상승)
1973년(1차), 1978년(2차) 중동발 오일쇼크로 유가 폭등. 1차 오일쇼크는 이스라엘을 지지하는 국가들에게 OPEC이 석유 금수조치를 실시하여 유가가 급등한 사건. 2차 오일쇼크는 다음 챕터(에너지가 세계에 미치는 영향)에서 간단하게 다룹니다. - 2차 변동(하락)
유가 상승이 유전개발을 자극하여 북해에서 대규모 유전이 개발되는 등 공급이 크게 증가 - 3차 변동(상승)
중국을 위시한 브릭스의 경제가 팽창하고 미국 등 선진국 경제가 호전되어 석유 수요가 급증 - 4차 변동(하락)
셰일혁명으로 공급 증가
저유가가 우리나라에 미치는 영향
우리나라 석유산업 구조
- 정유사는 싼 가격에 원료인 원유를 수입해 고부가가치의 석유제품으로 만든 뒤 수출
- 조선소는 유조선과 시추선을 만들어 고가에 수출
- 건설사는 해외에 석유화학 플랜트 건설
이 같은 구조를 지닌 우리나라는 저유가가 장기화될 경우 물동량이 줄고 발주가 취소됩니다. 재정난에 처한 산유국들의 오일머니가 빠져나가고, 조선소의 노동자들이 대량 해고됩니다. 그 여파로 우리나라 최대 해운사인 한진해운이 역사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서울에 테헤란로가 생긴이유
오일쇼크 때 중동국가 중 유일하게 이란이 우리나라에 석유를 공급해주었기 때문입니다. 1977년 서울과 테헤란은 자매결연을 맺고 그 상징적 조치로 서울엔 테헤란로를, 테헤란에는 서울로를 만들었습니다.
저무는 석유의 시대
세계 원유의 가채년수(채굴할 수 있는 연한)는 2016년 말 기준으로 50년이 넘습니다. 2006년에는 40년을 내다봤고, 이에 비해서 10년이 더 늘었다는건데요. 어쩌면 30년 후의 가채년수는 지금보다 더 늘지도 모릅니다. 기술의 진보로 원유 탐사, 개발, 시추기술이 향상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자는 좀 더 과감하게 말해서 석유의 고갈이 영원히 없을 것이라고 주장하는데요. 고갈되기 전에 다른 에너지원으로 대체될 것이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그는 공급의 피크가 아니라 수요의 피크로 석유시대가 종말할 것이라고 봅니다. 그리하여 저유가 시대가 뉴노멀로 자리잡을것이라고 주장합니다. 마지막 화석연료인 천연가스가 석유의 자리를 대체할 것이고, 그 또한 신재생에너지에 밀려날 것입니다. 그리고 핵융합의 완성으로 에너지 문제는 종지부를 찍을 것이라고 전망합니다.
에너지가 세계에 미치는 영향
중동 정세를 통해 보는 세계 에너지 시장
중동 분쟁의 원천은 에너지와 종파
- 수니파
선지자 무함마드의 혈통과 상관없이 교리에 대한 지식을 갖춘 덕망 있는 원로가 후계자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쪽. 이슬람 전체 인구 15억 명 가운데 90%를 차지. 사우디아라비아를 주축으로 시아파를 제외한 모든 이슬람국가가 해당. 이라크, 시리아에서 쫓겨난 수니파들이 IS를 결성. - 시아파
선지자 무함마드의 혈육이 후계자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쪽. 전체 이슬람 인구의 10%. 이란, 이라크, 바레인이 해당. - 이란의 이슬람 혁명
서방의 지원을 받는 팔레비 왕조와 민족주의를 내세운 호메이니의 권력싸움. 시아파 호메이니가 승리하며 이슬람 최고위 성직자가 대통령을 앞선 국가 최도지도자가 되는 신정체제가 시작. 유전 노동자의 파업으로 석유수출 전면 중단. 2차 오일쇼크 촉발 - 걸프전
시아파 세력의 이슬람 혁명을 견제하고자 수니파 이라크 지도자 후세인(이라크는 국민 70%가 시아파)이 이란을 침공하고, 이어서 쿠웨이트를 침공. 미국이 개입하자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이 성전 ‘지하드’를 준비, 911테러로 이어짐. - 카타르
LNG 최대 수출국 - 이스라엘
천연가스전 발견 - 시리아
내전으로 고통받고 있는데 원인은 가스 파이프라인을 둘러싸고 수니파, 시아파, IS, 쿠르드족이 각자의 이익을 위해 벌이는 각축전 때문.
미국이 바꾸는 세계 에너지 지도
셰일혁명이 세계 에너지 지도를 바꾸다
미국은 셰일혁명으로 인해 세계 최대의 석유 수입국에서 세계 최대의 산유국으로 등극했습니다. 미국이 원유 수입을 줄이자 갈 곳 잃은 잉여물량이 시장에 넘쳐나게 됐죠. 미국 제조업의 경쟁력이 되살아나고 리쇼어링이 시작됩니다. 금리를 인상함에 따라 이머징국가들에 투입됐던 자금이 빠져나오며 세계의 돈의 흐름이 바뀌게 됐습니다.
새로운 에너지 수출 시대를 열다
미국은 2000년대 중반 셰일혁명 이후 쳔연가스 중심의 생산이 증대됐습니다. 한편 2014년 하반기부터 시작된 저유가를 견디면서 기술의 진보로 생산비를 현격히 낮추고 원유 생산 중심으로 혁명의 흐름이 바뀌게 됐는데요. 이를 2차 셰일혁명이라고 부릅니다.
한편 우리나라는 경제적 부담을 줄이기 위해 주로 중동에서 생산되는 저렴한 중질유를 수입하고 있는데요. 이를 세계 최고 수준의 고도화설비로 정제하여 석유제품을 생산하고 있습니다. 놀랍게도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우리나라의 최대 수출품목이 석유관련 제품이라면 믿으실까요? 최대 산유국인 사우디, 미국, 러시아에서도 우리나라에서 석유제품을 수입하고 있습니다.
- 에너지 지정학의 하이라이트: 카스피해 파이프라인
카스피 해를 기점으로 BTC송유관, CPC송유관, 중앙아시아 파이프라인등이 모여있습니다.
- 파나마 운하(아메리카) 확장으로 태평양 수송 가능
VLCC, ULCC급의 대형 유조선은 통과할 수 없지만 LNG운반선은 파나마 운하를 대부분 통과할 수 있습니다. 태평양을 건너 오는 수송루트의 경우 기존의 희방봉을 돌아 오는 34일 루트보다 보름이나 적은 20일 정도가 소요된다고 합니다.
- 중동 산유국에서도 미국산 천연가스 수입
셰일혁명으로 미국산 천연가스의 가격히 현저히 낮아졌기 때문에, 발전연료로 석유보다 천연가스를 쓰는 것이 더 경제적이게 됐으며, 자국의 가스전을 개발하기 위해 드는 비용보다 미국산 LNG를 수입하는 것이 오히려 더 싸기 때문입니다.
셰일혁명이 낳은 비극, 어제와 다른 오늘의 미국
미국의 천연가스 가격은 자국내 수급에 맞춰진 헨리허브에 따라 움직이기 때문에 유가에 연동되어 있는 중동산 LNG보다 저유가 상황에선 수출에 불리합니다. 그러나 셰일가스의 생산비는 하락하고 생산량은 늘고 있기 때문에 미국의 천연가스 가격은 더 하락할 수 있습니다. 셰일가스는 셰일오일과 함께 생산되기 때문에 셰일오일과 가스의 생산이 늘어나면 국제유가는 하락하게 되고, 유가에 연동되어 있는 중동산 LNG가격도 하락합니다. 그렇게 되면 미국산 LNG 수출은 줄어들 수 밖에 없고 자국내 초과공급이 생긴 만큼 미국의 천연가스 가격인 헨리허브도 하락하게 됩니다. 결과적으로 이는 미국산 LNG 가격의 경쟁력을 어느정도 회복시켜주게 됩니다.
중국은 아직도 에너지에 배고프다
중국의 전략과 선택
중국은 석탄 중심의 에너지 소비에서 천연가스 중심의 소비로 탈바꿈하고자 합니다. 이를 위해서 다양한 에너지 루트를 확보하려고 하는데요. 주요 포인트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그림2 참고)
- 중국의 원유 공급 루트의 주요 포인트
호르무즈 해협, 말라카 해협, 바브엘만데브 해협, 보스포루스 해협 - 투 오션 전략
미얀마, 파키스탄을 관통하는 원유 파이프라인을 건설하여 태평양과 인도양에 대한 영향력을 강화 - 중앙아시아 파이프라인 CAC
투르크메니스탄으로부터 천연가스를 공급받는 파이프라인,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과 연결되어있음 - 시베리아의 힘
러시아로부터 공급받는 천연가스 파이프라인 - ESPO 송유관
러시아로부터 공급받는 원유 파이프라인
한편 중국은 미국, 캐나다에 이어 셰일가스를 생산하는 세 번째 나라입니다. 세계 최대의 셰일가스 매장량을 자랑하고 있으며, 대규모 생산은 시간문제로 보입니다.
에너지 확보를 위한 일대일로
일대는 중국에서 중앙아시아와 중동을 거쳐 유럽으로 이어지는 육상루트, 일로는 남중국해와 인도양을 거쳐 아프리카까지 이어지는 해상루트입니다. 일대일로의 대상국가는 총 65개국에 달하는데요, 이들의 원유 가채 매장량은 중국을 제외 하고도 2,100억 톤으로 전 세계의 70%를 차지합니다.
이 중에서도 핵심 파트너는 파키스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일대와 일로 사이에 위치한 지정학적 요충지로, 미국의 주요 안보 파트너인 인도를 견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경제회랑 프로젝트는 인도양의 과다르항에서 파키스탄을 관통하여 중국의 서부 신장의 카스까지 연결되는 원유, 가스 파이프라인을 건설하는 것입니다. 이 파이프 라인이 건설되면, 중동에서 수입한 원유를 과다르 항에서 직접 중국의 서부까지 운송할 수 있습니다.
일대일로는 무려 13개 국가와 국경을 맞대어 지정학적 공포를 가진 중국의 에너지 통로가 되어줄 것입니다.
여전한 에너지 강국 러시아의 도전과 응전
도전에 직면하다
러시아의 경제는 유가에 따라 성장률이 결정됩니다. 유가가 하락하면 마이너스 성장을 하고, 유가가 상승하면 고속성장을 하게되는 구조죠. 2016년 기준 원유 생산 1위, 천연가스 생산 2위의 에너지 강국이다 보니, 가만히 앉아서 원유를 팔아 손쉽게 수익을 챙기게 되고, 따라서 경제의 다른 부분은 낙후되는 ‘자원의 저주’를 받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바로 이 에너지가 러시아의 중요한 무기인데요. 유럽으로 천연가스를 수출하는 파이프 라인 중에 우크라이나를 통과하는 파이프 라인이 있습니다. 우크라이나 회랑이라고 불리는데요. 이 파이프라인은 공급받는 국가별로 따로 분리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우크라이나의 가스관과 통합되어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우크라이나는 러시아로부터 공급받는 총물량에서 자국에 할당된 물량을 빼내서 쓰는 구조고, 따라서 우크라이나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할당된 양보다 더 많은 가스를 빼낼 수 있는 상황입니다. 물론 빼내서 쓰게 되면 다른 국가들이 공급받는 물량이 줄어들게되는 정말 신기한 구조입니다.
문제는 러시아가 독점 공급을 하다보니 이런 저런 횡포를 부리는데, 우크라이나는 이 구조를 이용하여 러시아의 압력에 물러서지 않습니다. 그러자 러시아는 다른 파이프 라인을 건설하게 되며 우크라이나와 신경전이 시작됩니다.
셰일가스에 흔들리는 유럽시장
유럽의 러시아 가스 의존이 심해지자 미국의 셰일가스가 유럽의 희망이 되기 시작합니다. 그 중 하나가 FSRU라고 불리는 부유식 LNG 저장 재기화 선박인데요. 해상에 떠 있으면서 수송선에서 LNG를 받아서 저장할 수 있고, 이를 기화시켜서 바로 공급할 수 있는 해양 플랜트입니다. 별도의 기화 터미널이 필요 없기 때문에 ‘해상 LNG 터미널’로 불립니다. 비용이 많이 들지만 복잡한 설비 없이도 LNG 수입을 가능하게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죠. 아직까지는 유럽시장에서 러시아 파이프라인 가스보다 가격경쟁력이 약하지만, 그 자체만으로 대안을 가지게 된 것이기 때문에 의미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한편, 러시아의 가스 의존을 피하기 위한 프로젝트로 ‘남부회랑 프로젝트’를 들 수 있습니다. (그림2 좌측 남부가스회랑 참고) 이는 카스피해에서 코카서스 지역과 터키를 지나 유럽으로 가스 파이프라인을 건설하자는 것인데요. 건설하기만 하면 유럽은 러시아 의존을 상당부분 줄일 수 있습니다.
중국과의 에너지 밀월이 시작되다
중국은 러시아 입장에서 견제해야 할 국가이지만, 에너지의 공급과 수요라는 측면에서는 한 배를 탔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완전히 우방이 되기는 힘들기 때문에 이들의 이익관계가 어떻게 변하는지 잘 살펴봐야 할 것입니다.
일본, 에너지 위기를 기회로 만들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에너지 위기를 부르다
2011년 3월 11일 일본의 동북지역을 강타한 지진과 쓰나미의 여파로 후쿠시마 제1원전의 외벽이 무너지고 원자로가 녹아내렸습니다. 원전의 심각성을 깨달은 일본 정부는 이후 모든 원전의 가동을 멈췄습니다. 그리고 대안으로 천연가스를 선택했죠. 석유는 비싸고, 신재생 발전을 당장 늘리기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현실적 대안은 천연가스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일본이 수입하는 LNG 가격은 유가에 연동되어 있기 때문에 유가가 상승하면 일본의 연료비 부담이 가중된다는 문제가 있었죠. 하지만 헨리허브 가격지표로 움직이는 미국의 천연가스가 나타나면 어떨까요? 공교롭게도 이 때 미국은 셰일혁명으로 인하여 천연가스가 초과생산되고 있었던 터라 대규모 수요처를 확보해야 했던 시기였습니다. 결과적으로 일본은 기존에 다른 지역에서 도입하고 있던 LNG보다 절반 정도의 가격에 수입하게 됩니다. 에너지 위기가 양국간 동맹 강화의 기회가 된 것입니다.
에너지, 한반도의 미래를 바꾼다
한반도 파이프라인 프로젝트
한반도의 파이프라인은 러시아에서 북한을 거쳐 우리나라까지 이어지는 가스 파이프라인입니다. LNG 수송의 경우 거리가 4,800km 이상부터 가격경쟁력이 생기기 때문에 육로나 해저를 이용한 PNG방식이 필요하죠. 공급자인 러시아 입장에서도, 수요자인 북한과 우리나라의 입장에서도 좋은 프로젝트임에는 틀림 없습니다. 그러나 북한이 가운데서 장난을 안치리라는 보장이 없죠. 그래서 나온 방안이 북한을 우회하는 노선인 블라디보스크-삼척 해저 파이프라인과 중국 경유 파이프라인입니다.
북한의 심각한 에너지 부족
북한은 석탄이 풍부해서 석탄 수출로 먹고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러나 미국의 셰일혁명으로 인해 석탄에 대한 수요가 감소하자 자연스레 도태되었습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중국의 경제성장으로 인해 석유수요가 급증하고, 공급원인 다칭 유전의 생산이 감소하는 바람에 북한으로의 원유 공급마저 줄어들기 시작합니다. 이같이 북한은 지금 심각한 에너지 부족을 겪고 있는데, 바로 이 포인트가 북한 핵문제 해결의 단초를 제공해줄 수 있지 않을까요?
세계 에너지 시장의 중심으로 부상한 아시아
비록, 경제분야에서 협력과 상호의존성은 높음에도 불구하고 정치분야에서는 갈등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아시아 패러독스’에 빠져있지만, 한중일 3국은 세계경제의 25%, 소비하는 전력도 세계 전체의 30%를 차지하고 있는 세계 에너지 시장의 중심입니다. 오랫동안 서쪽 산유국의 판매자들이 쥐고 있던 에너지 헤게모니가 미국발 셰일혁명에 의해 구매자에게로 이동하게 된 것입니다.
셰일혁명은 확실히 들어보지도 못한 개념입니다. 미국의 셰일오일, 셰일가스 어쩌구하는건 몇 번 들어봤지만요. 확실한 것은 최근 액슨모빌, 셰브론, 옥시덴탈 패트롤리엄등의 에너지 기업들이 가스기업을 인수합병하고 있다는 뉴스가 이해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그 외에도 최근 예멘의 후티 반군들이 홍해에서 어떻게 해적질을 하는지 지도에서 찾아볼 수 있을 정도의 지리개념은 익혔습니다. 400여페이지에 좌우 여백없이 빽빽한 글자에 두려운 책이긴 합니다만, 읽어보시면 원유와 천연가스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경제 도서를 느리게 읽고 리뷰합니다.